2014년 7월 12일 토요일

고려 - 신분제도

<고려의 신분제도>
옛적에 우리 태조는 후손들에게 훈계하기를, ‘무릇 천인의 무리들은 그 종자가 별다르니 이들을 양인으로 삼지 말라. 만약 양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면, 뒷날 반드시 관직에 나아가게 될 것이고, 차차 요직을 차지하여 국가를 흔란스럽게 만들 것이니, 만약 이 훈령을 어기면 사직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법은 8대 동안의 호적이 천인의 무리와 관계가 없어야 비로소 벼슬을 할 수 있다. 무릇 천인의 무리에 속한 자는 아비나 어미 한쪽이 천인이면 자기도 천인이 된다. 비록 본주인이 놓아 주어 양민이 되더라도 그가 낳은 자식은 도로 천인이 된다. 또 본주인이 후손이 없이 죽더라도 주인 가문의 노비에 속하게 된다. 이것은 노비를 끝끝내 양민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고려사] 권85 형법2노비, 충렬왕 26년 10월

무릇 도망한 노비를 숨겨 주어 자신이 차지하는 자는 1일에 초 3자라는 법률에 의거하여 베 30자를 징수하여 본주인에게 지급하되, 비록 날 수가 많아도 노비의 원래의 몸값을 넘지는 말아야 한다. 남자 노비의 몸값은 나이가 16세에서 60세까지는 베 100필,  l5세 이하 및 60세 이상이면 60필이고, 여자 노비는 나이가 15세에서 50세까지는 120필, 16세 이하 50세 이상은 60필이다. [고려사] 권86 형법2노비, 성종 5년 7월

군현 사람이 진․역․부곡인과 결혼하여 낳은 자는 모두 진․역․부곡에 속하게 하고, 진․역․부곡인이 천인과 결흔하여 낳은 자는 절반씩 나누되, 남는 수는 어머니를 따르게 한다.  [고려사] 권84 형법1 호적

고려 - 훈요십조 전문

<훈요10조>
태조 26년(943) 여름 4월에 왕이 내전에 나가 앉아 대광 박술희를 불러서 친히 훈요를 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들으니 순 임금은 역산에서 농사를 지었으나 마침내 요임금의 왕위를 받았으며 한의 고제 패택에서 일어나 한나라의 왕업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나도 역지 한갖 외로운 평 민으로서 그릇되게 여러 사람들의 추대를 받았다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19년 동안 노심초사한 끝에 삼한을 통일하여 외람스럽게 왕위에 있은 지가 25년이나 되었고 몸도 벌써 늙었다 후손들이 감정과 욕심에 사로 잡혀 나라의 질서를 문란시킬 듯하니 이것이 크게 근심스럽다. 이에 훈계를 써서 후손들에게 전하노니 아침 저녁으로 펼쳐 보아 영구히 모범으로 삼게 하기를 바란다.

첫째, 우리 국가의 왕업은 반드시 모든 부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불교 사원들을 창건하고 주지들을 파견하여 불도를 닦음으로써 각각 자기 직책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 간신이 권력을 잡으면 승려들이 청탁을 받아서 모든 사원들이 서로 쟁탈하게 될 것이니 이런 일을 엄격히 금지하여야 한다
둘째, 모든 사원들은 모두 도선의 의견에 의하여 국내 산천의 좋고 나쁜 것을 가려서 창건한 것이다. 도선의 말에 의하여 자기가 선정한 이외에 함부로 사원을 짓는다면 지덕을 손상시켜 국운이 길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후세의 국왕, 공후, 왕비, 대관들이 각기 원당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은 사원들을 증축할 것이니 이것이 크게 근심이 되는 바이다. 신라 말기에 사원들을 야단스럽게 세워서 지덕을 훼손시켰고 결국 나라가 멸망하였으니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셋째, 적자에게 왕위를 계숭시키는 것이 비록 떳떳한 법이라고 하지만 옛날 단주가 착하지 못하여 요가 순에게 나라를 선양한 것은 실로 공명정대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후세에 만일 국왕의 맏아들이 착하지 못하거든 차자에게 줄 것이며 차자 또한 착하지 못하거든 그 형제중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신망이 있는 자로써 정통을 잇게 할 것이다
넷째, 우리 동방은 오래 전부터 중국풍습을 본받아 문물, 예악, 제도를 다 그대로 준수하여 왔다.그러나 지역이 다르고 사람의 성품도 같지 않으니 구태여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거란은 우매한 나라로서 풍속과 언어가 다르니 그들의 의관, 제도를 아예 본받지 말라.
다섯째, 내가 삼한 산천 신령의 도움을 받아 왕업을 이루었다. 서경의 수덕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수맥의 근본으로 되어 있으니 만대 왕업의 기지이다. 마땅히 춘하추동 사계절의 중간 달에 국왕은 거기에 가서 100일 이상 체류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게 할 것이다.
여섯쌔, 나의 지극한 관심은 연등과 팔관에 있다.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고, 팔관은 하늘의 신령과 5악, 명산, 대천, 용의 신을 섬 기는 것이다. 함부로 증감하려는 후세 간신들의 건의를 절대로 금지할 것이다. 나도 당초에 이 모임을 국가 기일과 상치되지 않게 하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기로 굳게 맹세하여 왔으니 마땅히 조심하여 이대로 시행할 것이다
일곱째, 임금이 신하의 신망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그 신망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간하는 말을 따르고 참소하는 자를 멀리하여야 하는 바 간하는 말을 따르면 현명하게 된다. 참소하는 말은 꿀처럼 달지만 그것 을 믿지않으면 참소가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또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되 적당한 시기를 가리고 부역을 경하게 하며 조세를 적게 하는 동시에 농사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 자연히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편안하게 될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좋은 미끼 끝에는 반드시 큰 고기가 물리고 중한 상(賞)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있으며 활을 겨누면 반드시 피하는 새가 있고 착한 정치를 하면 반드시 착한 백성이 있다고 하였다. 상과 벌이 적절하면 음양이 맞아 기후까지 순조로워지니 그것을 명심하라.
여덟째, 차현이남 금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고 따라서 인심도 그러하니 그 아래 있는 주군 사람들이 국사에 참여하거나 왕후, 국척들과 혼인을 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혹은 국가에 변란을 일으킬 것이요, 혹은 백제를 통합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여 난을 일으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방 사람들로서 일찍이 관가의 노비나 진역의 잡척에 속하였던 자들이 혹 세력가들에 투탁하여 자기 신분을 고치거나 혹은 왕후, 궁중에 아부하여 간교한 말로서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또 그떻게 함으로써 재변을 초래하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방 사람들은 비록 양민일지라도 관직을 주어 정치에 참여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아홉째, 백관의 녹봉은 나라의 대소를 따라 일정한 제도를 마련할 것이니 현재의 것을 증감하지 말라. 또 옛 문헌에 이르기를 공로를 보아 녹봉을 규정하고 사사로운 관계로 관직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만일 공로가 없는 사람이나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으로저 헛되이 녹봉을 받게 되면 아래 백성들이 원망하고 비방할 뿐 아니라 그 사람 자신도 역시 그 행복을 길이 누릴 수 없을 것이니 마땅히 엄격하게 이를 경계해야 한다.또 우리는 강하고도 악한 나라(거란)가 가까이 있으니 평화로운 시기에도 위험을 잊어서 안된다. 병졸들을 보호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며 부역을 면제하고 매년 을에 무예가 특출한 자들을 검열하여 적당히 벼슬을 높척주어야 한다.
열째, 나라를 가진 자나 집을 가진 자는 항상 만일을 경계하며 경전과 타서적을 널리 읽어 옛일을 지금의 교훈으로 삼을 것이다. 주공은 성인으로서 [무일(無逸)] 한 편을 성왕에게 을려 그를 경계하였으니 마땅히 그 사실을 그림으로 그려 붙여 드나들 때에 항상 보고 자기를 반성하도록 하라.' 이 열 가지 훈계 끝에 매번 ‘중심장지(中心藏之)’라는 네 글자를 써붙여서 후대의 왕들이 전해내려 오면서 보배로 여기게 하였다. <고려사> 권2 세가2 태조26년

간도 - 백두산 정계비

大 淸
烏喇摠管 穆克登, 奉旨査邊, 至此審視,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 勒石爲記, 康熙 五十一年 五月十五日
오라 총관 목극등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변방의 경계를 직접 조사하고자 이 곳에 이르러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이고 동쪽은 토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나뉘는 고개 위에 돌을 새겨 기록하노라.
강희 51년 5월 15일 

조선 후기 - 세도정치 삼정문란

가을에 한 늙은 아전이 대궐에서 돌아와서 처와 자식에게 “요즘 이름 있는 관리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여도 나랏일에 대한 계획이나 백성을 위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각 고을에서 보내오는 뇌물의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만에 관심을 가지고, 어느 고을의 수령이 보낸 물건은 극히 정묘하고, 또 어느 수령이 보낸 물건은 매우 넉넉하다고 말한다. 이름 있는 관리들이 말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지방에서 거둬들이는 것이 반드시 늘어날 것이다.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하고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려 마지않았다. - 정약용 < 목민심서> -


시아버지 돌아가셔 이미 상복을 입은데다,
아이는 아직 배냇물도 씻지 않았는데,
세 사람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다나요.......
세도 있는 집안에서는 일년 내내 풍악이 울리지만
쌀 한 통, 비단 한 조각 축나는 일 없다네
우리 백성들 똑같아야 하건만 어찌해서 가난하고 부유한가 ?
- 정약용, 「애절양」-

조선 후기 - 탕평책

신축(1721) ․ 임인년(1722) 이래로 조정에서 노론,소론, 남인의 삼색이 날이 갈수록 더욱 사이가 나빠서 서로 역적이란 이름으로 모함하니 이 영향이 시골에까지 미치게 되어 하나의 싸움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서로 혼인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당색끼리는 서로 용납하지 않는 지경까지에 이르렀다....... 대체로 당색이 처음 일어날 때에는 미미하였으나 자손들이 그 조상의 당론을 지켜 200년을 내려오면서 마침내 굳어져 깨뜨릴 수 없는 당이 되고 말았다...... 근래에 와서는 사색이 모두 진출하여 오직 벼슬만 할뿐, 예부터 저마 지켜온 의리는 쓸모없는 물건처럼 되었고, 사문(유학)을 위한 시비와 국가에 대한 충역은 모두 과거의 일로 돌려 버리니...... <택리지>

붕당의 폐해가 요즈음 보다 심각한 적이 없었다. 근래에 와서 인재의 임용이 당목에 들어 있는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니 이러한 상태가 그치지 않는다면 조정에 벼슬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 (중략) 지금 새롭게 중창할 시기를 맞이하여 어찌 잘못을 고치고 신정에 힘쓸 생각이 없겠는가 ? 유배된 사람들은 그 경중을 헤아려 이조가 탕평의 정신으로 수용토록 하라. (중략) 나의 이 말은 위로는 종사를 위하고 아래로는 조정을 진정하려는 것이다. 혹시 이를 의심하거나 기회로 생각하여 상소를 제기하여 알력을 빚는다면, 평생 동안 금고에 처하여 조정에 참여할 뜻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 < 영조실록 > -


조선 후기 - 세제 개편

1. 각 고을의 진상과 공물이 각급 관청의 방납인에 의해 저지되어, 한 물건의 값이 3~4배 혹은 수십, 수백 배까지 되어 그 폐해가 극심하고, 특히 경기 지방은 더욱 그러합니다. [광해군일기]

2. 대동의 법은 호세가(豪勢家)는 불편하다고 하고, 가난한 백성들은 편하다고 한다. [효종실록]

3. 각도의 공물은 지금 쌀과 포목으로써 상납한다. 평안도의 공물은 상납하지 않고 그 대가는 호조의 쌀, 전, 포목으로써 공인에게 출급한다. 방민을 선택하여 관청의 용달인으로 정하고, 그 가격을 넉넉히 계산하여 정해서 미리 준비시켜 이로써 공납하게 한다. [속대전] 호전 세공 조


나라의 100여 년에 걸친 고질 병폐로서 가장 심한 것은 양역이다. 호포니 구전이니 결포니 하는 주장들이 분분하게 나왔으나 적당히 따를 만한 것이 없다. ~ 혹한 집안에 부자, 조손이 군적에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거나 혹은 3ㆍ4명의 형제가 한꺼번에 군포를 납부해야 하며, 또한 이웃이 견책을 당하고 친척이 징수를 당하고, 젖먹이는 젖 밑에서 군정으로 편성되고, 죽은 사람은 지하에서 징수를 당하며, 한 사람이 도망하면, 열집이 보존되지 못하니, 비록 좋은 재상과 현명한 수령이라도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출전 [영조실록] 영조 23년 10월

조선 후기 - 비변사


선조 27년 6월 갑자, 비변사가 아뢰었다. “합천 군수 나적과 거창 현감 우치적은 고을을 잘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도원수 장계를 보니 토호를 엄중히 단속하지 못한 실수도 하였습니다. 국가가 어려운 때 지방 수령이 참으로 탐학하여 백성을 해치지 않으면 자주 교체하여 백성에게 폐단을 가중해서는 안됩니다. 신들은 나적과 우치적을 군문(軍門)으로 잡아다가 벌을 주고 경계를 시킨 뒤에 유임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 <선조실록> -


효종 5년 11월 임인 김익희가 상소하였다. “ 요즈음 비변사가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모두 취급합니다. 의정부는 한갓 헛 이름만 지니고 육조는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름은 ‘변방 방비를 담당하는 것’〔備邊〕’ 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대한 판정이나 비빈 간택까지도 모두 여기서 합니다. ” - < 효종실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