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7년 6월 갑자, 비변사가 아뢰었다. “합천 군수 나적과 거창 현감 우치적은 고을을 잘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도원수 장계를 보니 토호를 엄중히 단속하지 못한 실수도 하였습니다. 국가가 어려운 때 지방 수령이 참으로 탐학하여 백성을 해치지 않으면 자주 교체하여 백성에게 폐단을 가중해서는 안됩니다. 신들은 나적과 우치적을 군문(軍門)으로 잡아다가 벌을 주고 경계를 시킨 뒤에 유임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 <선조실록> -
효종 5년 11월 임인 김익희가 상소하였다. “ 요즈음 비변사가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모두 취급합니다. 의정부는 한갓 헛 이름만 지니고 육조는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름은 ‘변방 방비를 담당하는 것’〔備邊〕’ 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대한 판정이나 비빈 간택까지도 모두 여기서 합니다. ” - < 효종실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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