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2일 토요일

조선 후기 - 탕평책

신축(1721) ․ 임인년(1722) 이래로 조정에서 노론,소론, 남인의 삼색이 날이 갈수록 더욱 사이가 나빠서 서로 역적이란 이름으로 모함하니 이 영향이 시골에까지 미치게 되어 하나의 싸움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서로 혼인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당색끼리는 서로 용납하지 않는 지경까지에 이르렀다....... 대체로 당색이 처음 일어날 때에는 미미하였으나 자손들이 그 조상의 당론을 지켜 200년을 내려오면서 마침내 굳어져 깨뜨릴 수 없는 당이 되고 말았다...... 근래에 와서는 사색이 모두 진출하여 오직 벼슬만 할뿐, 예부터 저마 지켜온 의리는 쓸모없는 물건처럼 되었고, 사문(유학)을 위한 시비와 국가에 대한 충역은 모두 과거의 일로 돌려 버리니...... <택리지>

붕당의 폐해가 요즈음 보다 심각한 적이 없었다. 근래에 와서 인재의 임용이 당목에 들어 있는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니 이러한 상태가 그치지 않는다면 조정에 벼슬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 (중략) 지금 새롭게 중창할 시기를 맞이하여 어찌 잘못을 고치고 신정에 힘쓸 생각이 없겠는가 ? 유배된 사람들은 그 경중을 헤아려 이조가 탕평의 정신으로 수용토록 하라. (중략) 나의 이 말은 위로는 종사를 위하고 아래로는 조정을 진정하려는 것이다. 혹시 이를 의심하거나 기회로 생각하여 상소를 제기하여 알력을 빚는다면, 평생 동안 금고에 처하여 조정에 참여할 뜻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 < 영조실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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