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서경에 행차하여 처음으로 학교를 세웠다. 왕이 정악에게 서경에 머물러 서학박사(書學博士)가 되게 하고 따로 학원을 세워 서경 육부에서 생도를 모아 가르치게 하였다. 뒤에 성과가 좋다는 말을 듣고 비단을 내려 권장하고, 또 곡식 100석을 내려 學寶를 삼게 하였다.
(나) 12목에 경전에 능통하고 책을 많이 읽은 선비들을 모아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를 각각 한 사람씩 보내 가르치게 하였다.
(다) 무릇 과거에 나아가려는 자는 모두 9제(薺)에 적을 두니, 이를 문헌 공도라 불렀다. 또 유신(儒臣)으로 도(徒)를 세운자가 11명이 있으니, 문헌공 최충과 아울러 세칭 12도라 하였지만, 최충의 도가 가장 성하였다.
(라) 안향은 학교가 날로 쇄함을 근심하여 “지금 養賢庫가 메말라 선비를 기를 수 없으니 6품 이상은 각각 은 한근을 내고 7품이하는 포를 차등있게 내도록 하여 이를 양현고에 돌려 본전에 두고 이식만을 취하여 섬학전으로 삼자”고하니 兩部가 이를 쫓아 아뢰고 왕도 內庫의 錢穀으로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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