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조선후기 - 탈성리학



  ^_나_^의 저술 의도는 주자의 해석과 다른 학설을 제기하려는 것보다 의문점 몇 가지를 기록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주자 당시에 태어나 제자의 예를 갖추었더라도 … 반드시 반복하여 질문하고, 생각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 ^_나_^는 단지 붕우들과 더불어 강론하여 뒷날의 이해가 점차 나아지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데 근래에 송영보가 이단이라고 배척하였다. 송영보의 학문은 전혀 의심을 내지 않고, 주자의 가르침이라면 덮어놓고 의론을 용납하지 않으니, 비록 존신한다 하더라도 이 어찌 실제로 체득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편파적이고 지나친 언행을 멋대로 하여 기탄없이 주자를 헐뜯기에 이르렀고, 주자의 주석을 옳지 않다 하여 자기의 의견으로 바꾸고 중용의 문장과 구절을 쓸어 없애고 스스로 새 주석을 달아서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 제가 생각하기에 주자의 도는 해가 하늘에 떠 있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 같은 자 1만 명이 나와서 헐뜯는다 해도 어찌 털끝만큼인들 그 빛을 흐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세도에 해가 되는 점은 큽니다.  --'송자대전'

  * 송나라 때 정자, 주자 두 선생이 6경의 뜻을 다시 환하게 밝혔다. 그러나 경에 실린 말의 근본은 비록 하나지만 실마리는 천 갈래 만 갈래이다. 이 때문에 (가)은/는 좁은 소견으로 얻은 것을 대강 기술하여 그 이름을 사변록이라 하였다.
  * (가)은/는 윤증의 당이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괴벽한 행동을 하는 자로 항상 남의 뒤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더니, 청환에서 탈락된 뒤에는 분한 마음을 품고 물러나서 감히 한 권의 책을 지어 사변록이라 하였다. 주자의 사서집주를 공격하고 심지어 중용에서는 제멋대로 장구를 고쳤으니, 한결같이 윤휴의 투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천하의 많은 이치를 어찌하여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인가. 주자는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학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공자나 맹자가 다시 태어나면 내 학설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 윤휴 -


양명학
 * 지는 심의 본체이다. 심은 자연히 지를 모이게 한다. 아버지를 보면 자연히 효를 안다. 형을 보면 자연히 공손함을 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자연히 측은을 안다. 이것이 곧 양지이다.
  * 양천제는 분명히 없애야 할 제도이다. 특히 공·사천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면천의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양반 및 붕당·군적도 없애야 할 것들이다.
  * 본래 사람의 생리 속에는 밝게 깨닫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두루 잘 통해서 어둡지 않게 된다. 따라서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할 줄 알며 사양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못하는 것이 없다. 이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덕이며 이른바 양지라고 하는 것이니, 또한 인이라고도 한다.
  * 이미 양지라고 말하면 앎 속에 행함이 있고 행함 속에 앎이 있으니, 선후로 나눌 수는 없다.
   * 앎과 행함은 본래 하나인 것이다. 앎과 행함을 나누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며, 앎과 행함을 하나로 하는 사람은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정제두, '하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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