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_^의 저술 의도는 주자의 해석과 다른 학설을 제기하려는 것보다 의문점 몇 가지를 기록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주자 당시에 태어나 제자의 예를 갖추었더라도 … 반드시 반복하여 질문하고, 생각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 ^_나_^는 단지 붕우들과 더불어 강론하여 뒷날의 이해가 점차 나아지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데 근래에 송영보가 이단이라고 배척하였다. 송영보의 학문은 전혀 의심을 내지 않고, 주자의 가르침이라면 덮어놓고 의론을 용납하지 않으니, 비록 존신한다 하더라도 이 어찌 실제로 체득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편파적이고 지나친 언행을 멋대로 하여 기탄없이 주자를 헐뜯기에 이르렀고, 주자의 주석을 옳지 않다 하여 자기의 의견으로 바꾸고 중용의 문장과 구절을 쓸어 없애고 스스로 새 주석을 달아서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 제가 생각하기에 주자의 도는 해가 하늘에 떠 있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 같은 자 1만 명이 나와서 헐뜯는다 해도 어찌 털끝만큼인들 그 빛을 흐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세도에 해가 되는 점은 큽니다. --'송자대전'
* 송나라 때 정자, 주자 두 선생이 6경의 뜻을 다시 환하게 밝혔다. 그러나 경에 실린 말의 근본은 비록 하나지만 실마리는 천 갈래 만 갈래이다. 이 때문에 (가)은/는 좁은 소견으로 얻은 것을 대강 기술하여 그 이름을 사변록이라 하였다.
* (가)은/는 윤증의 당이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괴벽한 행동을 하는 자로 항상 남의 뒤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더니, 청환에서 탈락된 뒤에는 분한 마음을 품고 물러나서 감히 한 권의 책을 지어 사변록이라 하였다. 주자의 사서집주를 공격하고 심지어 중용에서는 제멋대로 장구를 고쳤으니, 한결같이 윤휴의 투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천하의 많은 이치
양명학
* 지는 심의 본체이다. 심은 자연히 지를 모이게 한다. 아버지를 보면 자연히 효를 안다. 형을 보면 자연히 공손함을 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자연히 측은을 안다. 이것이 곧 양지이다.
* 양천제는 분명히 없애야 할 제도이다. 특히 공·사천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면천의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양반 및 붕당·군적도 없애야 할 것들이다.
* 본래 사람의 생리 속에는 밝게 깨닫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두루 잘 통해서 어둡지 않게 된다. 따라서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할 줄 알며 사양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못하는 것이 없다. 이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덕이며 이른바 양지라고 하는 것이니, 또한 인이라고도 한다.
* 이미 양지라고 말하면 앎 속에 행함이 있고 행함 속에 앎이 있으니, 선후로 나눌 수는 없다.
* 앎과 행함은 본래 하나인 것이다. 앎과 행함을 나누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며, 앎과 행함을 하나로 하는 사람은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정제두, '하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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